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Marlin 作

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Marlin 作 “역시 집이 좋다!” 짐을 한가득 양 손에 들고 있는 지석과 달리 오랜만에 퇴원하여 기분이 최고조인 아현은 온 집안을 들쑤시고 다녔다. 침대에 달려들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마냥 풍덩 뛰어들기도 했고, 베개를 안고 뒹굴 거리기도 했다. 이제 아현의 볼에도 살이 통통히 올라 점점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기운도...

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Marlin 作 “흠……. 간단히 말하자면 이 정도 진단이면 환자가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낄 정도야. 아마 곧 증상이 눈에 띄게 나빠질 걸? 기억력 감퇴 뿐 만 아니라 판단력 저하, 공간감각 저하 같은 전반적인 뇌의 기능 저하가 일어날 거고.” “주변에서 증상을 눈치 챌 정도가 될까?” “환자의 증상이 어느 성향을 주로 나타나...

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Marlin 作 “엄마, 깜짝이야!” 지석의 바로 옆에서 울려대는 알람 소리 탓에 그는 용수철처럼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학창 시절 이후로 이렇게 침대에서 한 번에 벌떡 일어난 것이 얼마만인가 싶었다. “어휴, 아현이 깨겠다. 병원에서 이 무슨 민폐야.”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지석은 자신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도 눈치 채지...

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Marlin 作 하루하루가 갈수록 지석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희망이 일말의 존재조차 없는 곳에서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미의 전화 한 통으로 인하여 그의 마음은 좌불안석이 되었다. 마지막에 영미가 손바닥 뒤집 듯 마음을 바꾸게 될까봐 그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지석에게는 이야기 할 상대가 필요했다. 혹시나 하는 ...

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Marlin 作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입니다. 기억력에 문제를 보이다 언어력, 판단력 등 다양한 뇌 활동에 이상이 생기게 시작할 것 입니다. 연령대도 아직 이르시고 아마 빠르게 증상이 발달하게 될 것으로 보이네요. 약물 치료를 시작하시겠지만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뿐 병을 완전히 치료 하기는 어려운 병입니다. 죄송합니다.” 지석...

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Marlin 作 “으아, 늦었다, 늦어.” 좁은 자취방의 신발장 앞에 구겨진 운동화가 아현의 발에 끼워지고 채 뒤 굽이 빠지지도 않은 채 신발의 주인은 밖으로 뛰쳐나왔다. 막 자취방이 있는 건물의 현관을 빠져나와 학교로 뛰던 아현이 '아차차’하면서 다시 돌아왔다. 편지함의 앞에 선 아현은 201호의 우편함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Marlin 作 “일주일 남았지?” 지석이 내미는 빈 소주잔에 투명한 소주를 채워가며 아현이 말했다. 대학교 일학년을 막 마치고 겨울 방학을 앞둔 그 추운 겨울 두 사람은 굳이 포장마차를 택해서 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둘의 앞에는 새빨갛게 양념된 닭발과 소주 한 병이 놓여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술집의 감자튀김이나 과일 안주에...

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Marlin 作 아침에 눈을 뜨니 낯선 곳이었다. 평소처럼 느껴지던 아현의 방의 천소파의 까칠한 느낌도 없었고, 눈뜨자마자 보이던 하얀색 다이아몬드 모양의 벽지도 보이지 않았다. 몽롱한 상태에서 고개를 돌린 곳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침대 위에서 아직도 곤히 잠들어 있어야 하는 아현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에 보이는...

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Marlin 作 서울 청량리에서 세 시간 반 동안 무궁화호를 타고 도착한 곳은 경상북도 안동이었다. 안동역에서 내리고 나니 역 앞의 큰 삼차선 도로가 지석을 맞이했다. 높은 건물들로 가득하고 사람들로 바글거렸던 서울과 달리 경상도에서도 꽤나 큰 도시인 안동임에도 불구하고 시골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울에서 볼 수 없었던...

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Marlin 作 달그닥, 달그닥. 귀를 울리는 어색한 소리에 지석은 눈을 떴다. 이미 늦은 아침이 되었는지, 커튼 사이로 봄 햇살이 따사롭게 비춰졌다. 새벽녘 바닥으로 떨어졌던 담요는 어느새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져있었다. 여전히 비몽사몽 한 기분으로 천천히 눈을 뜨니 부엌에서 요란스럽게 움직이 고 있는 아현이 보였다. 남자들이...

부제: 고백

그녀에 대한 백 가지 이야기 Marlin 作 “우, 아, 현.”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말하며 다가오는 지석의 목소리에 그녀는 듣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책으로부터 눈을 땠다. 지석은 80살 넘은 노인 마냥 뒷짐을 지고 교실 뒷문을 넘어 오고 있었다. 대학 입시가 끝났지만 아직은 고등학생의 시절에 머무는, 인생의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비록 같은 반은 아...